버튼 하나의 약탈: 행위는 쉬워졌고, 책임은 증발했다
'혁신', '생산성의 혁명'. 요즘 생성형 AI를 수식하는 말들은 화려하다.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고,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시대라고 한다. 하지만 그 화려한 수사 뒤에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본질적인 구멍이 하나 있다. 바로 '행위의 무게'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다.
내가 생각하는 AI의 가장 큰 문제는 기술적 결함이 아니다. 남의 것을 가져와 내 것으로 치부하는 과정이 너무나 매끄럽고 쉬워졌다는 것, 그리고 그 편리함에 취해 행위는 쉬워졌는데 책임은 오히려 가벼워졌다는 점이다.
과정의 생략이 낳은 뻔뻔함
과거에 남의 그림을 베끼거나 사진을 조작하려 했다면, 적어도 그만한 기술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. 역설적이게도 그 지루하고 어려운 과정은 인간에게 "내가 지금 정당한 일을 하고 있는가?"를 묻게 만드는 마지막 브레이크였다.
하지만 지금은 어떤가? 명령어 한 줄, 클릭 한 번이면 타인이 평생을 바쳐 닦아온 화풍이 순식간에 '내 작품'으로 둔갑한다.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결과물을 얻었기에, 사람들은 이 명백한 약탈 행위를 '놀이'나 '가벼운 툴 사용' 정도로 취급한다. "내가 훔친 게 아니다. AI가 만들어줬을 뿐이다."라는 변명 뒤에 숨어, 남의 창작물을 내 성취인 양 포장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. 이것은 '창작의 민주화'가 아니라 '도용의 자동화'에 가깝다.
타인의 존엄을 장난감으로 만드는 가벼움
이 '가벼움'이 단순한 저작권 문제를 넘어 사회적 흉기가 되는 지점은 타인의 인격을 다룰 때다. 최근 문제가 되는 딥페이크나 지인 능욕 같은 범죄들을 보자. 타인의 얼굴을 가져다 조롱거리로 만들고, 거짓된 상황을 만들어 유포하는 데 1분도 걸리지 않는다.
가해자에게 이 행위는 그저 키보드 몇 번 두드리는, 깃털처럼 가벼운 장난감일 뿐이다. 하지만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고통은 천근만근의 바위와 같다. 기술의 극단적인 편의성이 인간의 죄책감을 마비시켰고, 모니터 속 픽셀 뒤에 실존하는 사람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마저 삭제해 버린 것이다.
편리함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
우리는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. 타인의 결과물을 1초 만에 가져오는 기술이 생겼다고 해서, 타인의 권리를 1초 만에 짓밟을 권리까지 생긴 것은 아니다.
도구는 진화했지만, 그 도구를 쥐고 있는 우리의 윤리의식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. 기술적 접근이 쉬워질수록, 우리가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는 오히려 더 무거워져야 한다. "버튼만 누르면 되니까"라는 편리함이 결코 윤리적 책임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.
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빠른 AI가 아니라, 이 가벼워진 책임의 무게를 다시 무겁게 직시하는 태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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